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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tic Model A 매칭기 - 1.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리뷰어 : 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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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개월 째 필자의 시청실을 지키고 있는 스피커가 있다. 캐니다 헤레틱(Heretic Loudspeakers)의 Model A 스피커다. 오디오 좀 하신 분들이라면 알텍 랜싱 A7을 연상케 하는, 그야말로 빈티지에 레트로 감성을 보탠 스피커인데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분명 2023년에 출시된 신작 현대 스피커이지만 소릿결이나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 자체가 요즘 스피커와 다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놓치고 있었던 생기 가득하고 에너지 넘치는 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그렇다고 고역은 세고 저음은 펑퍼짐한 옛날 사운드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스피커를 듣다보면 놀라는 것이 바로 완벽에 가까운 대역밸런스와 "실화냐?" 싶은 해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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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소개를 해드리면, Model A는 안에 1인치 컴프레션 드라이버가 박힌 12인치 동축 유닛과 그 앞에 쇼트 익스포넨셜 혼, 인클로저 전면 하단에 2개 포트를 낸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다. 공칭 임피던스는 8옴, 감도는 100dB이며, 주파수응답특성은 -6dB 기준 35Hz~22kHz라는 준수한 수치를 보인다.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1.7kHz, 네트워크 회로에는 문도르프 커패시터와 공심 코일 등이 투입됐다. 높이는 93cm, 가로폭은 61cm, 안길이는 53cm, 무게는 개당 40kg. 후면 하단에 있는 싱글 와이어링 바인딩 포스트는 뉴트릭 제품이며, 인클로저는 12겹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들었다. 제작사에서 밝힌 권장 앰프 출력은 3~300W.

제작사 헤레틱은 알텍 랜싱 마니아 로버트 가부리(Robert Gaboury)가 설립한 캐나다 제작사로, 앞서 1960년대 비틀 모니터로 불렸던 알텍 랜싱 Utility 612를 오마주한 AD612를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AD614는 AD612와 동일한 12인치 동축 유닛을 썼지만 인클로저가 AD612보다 조금 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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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레틱 Model A

그동안 이 스피커로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만 해도 노라 존스의 Seven Years, 소니 롤린스의 St. Thomas, 티에리 피셔와 유타 심포니의 말러 1번이 연이어 재생되고 있다. 확실히 깨끗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소리이며, 스피커와 앰프는 사라지고 그냥 저 앞에 사람과 악기들이 스윽 나타나 노래하고 연주할 뿐이다. 필자의 B&W 801 D4 스피커에 비하면 보다 견고하고 스트레이트한 소리다.

앞으로 3회에 걸쳐 헤레틱 Model A 스피커 매칭기를 써볼 생각이다. 주로 파워앰프를 바꿔가며 이 스피커의 속내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인데, 첫번째 매칭 주인공은 필자가 5년 넘게 사용 중인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이다. 소릿결이 언제나 단정하고 매끄러우며 필요할 때 스피커를 부족함없이 드라이빙해주는 녀석이다. 8옴에서 250W, 4옴에서 380W를 내는 이 솔리드 파워앰프와 공칭 임피던스 8옴에 감도가 무려 100dB나 되는 Model A는 과연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작정하고 들어봤다.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솜의 sMS-200 Ultra, DAC는 코드 Hugo M-Scaler와 마이텍 Manhattan II DAC 조합, 프리앰프는 패스 XP-12를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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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레틱 Model A

No.1 헤레틱 Model A +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고백컨대, 처음에는 감도가 100dB나 되는 스피커에 8옴에서 250W를 내는 앰프를 물려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AW250R이 워낙 SN비가 좋은 앰프인 점과 제작사 권장 앰프출력 상한이 300W인 점에 용기를 냈다. AW250R이 평소 필자의 서브 스피커이자 감도가 96dB인 드보어피델리티 Orangutan O/96을 통해 맑고 감칠 맛 나는 사운드를 들려준 점도 참고했다. 고감도 스피커에는 소출력 진공관 앰프, 이런 뻔한 공식도 있지만 드라이빙 능력이 안되는 소출력 진공관 앰프와 고감도 대구경 스피커 매칭은 그냥 겉멋만 잔뜩 든 매칭이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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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AW250R은 일렉트로콤파니에에서 FTT(Floating Transformer Technology)라고 명명한 전원부 설계로 보통 앰프 전원부의 2배에 달하는 강력한 전류를 공급하는 것이 특징. 최대 피크 전류가 무려 100A에 달하는 배경이다. 전원 트랜스는 650VA 토로이달 트랜스포머가 위아래 겹쳐 2개 투입됐고, 평활 및 정전 커패시터는 1만uF 짜리를 12개 써서 총 12만 uF의 정전용량을 확보했다. 출력단에는 채널당 12개의 바이폴라 트랜지스터가 푸쉬풀 구동, 클래스AB 증폭한다. 7W까지는 클래스 A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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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존스 - Seven Years (Come Away With Me)

습관적으로 노라 존스의 Seven Years부터 듣는다. 처음 기타 소리가 무대 가운데에 또렷하게 맺히는데 그 음이 따뜻하다. 이미지 윤곽선은 기대 이상으로 또렷한 편. 이어 등장한 노라 존스의 목소리는 더욱 따뜻하고 보드랍고 감미롭다. 더이상 뭐가 더 필요할까 싶다. 현재 볼륨이 그리 큰 편이 아닌데 폼이 무너지거나 밸런스가 깨지는 이상현상은 전혀 없다. 퍼커션 왼쪽, 기타 오른쪽, 봄 날 아지랑이처럼 노곤하게 피어오른다. 공격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음들이 어이없이 뭉개지거나 뭉치지도 않는다. 12인치 우퍼와 1인치 컴프레션 드라이버에 혼 조합으로 이런 소리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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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롤린스 - St. Thomas (Saxophone Colossus)

드럼 사운드가 이렇게 건조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들린 적이 있나 싶다. 잘 마른 천 기저귀 같다. 장마철 벽지에 스며든 곰팡이처럼 눅눅한 구석이 1도 없다. 놀라운 것은 이 드럼 앞에 등장한 색소폰인데 그 이미지가 너무나도 또렷하다. 스피커 생긴 것만 보면 색번짐이 있을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스피커는 진작에 사라지고 필요한 악기들만 무대에 가득하다. 드럼이 어쩌면 이렇게 찰지고 맛깔스럽게 연주하나, 왜 평소 다른 스피커로 들을 때에는 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12인치 동축 우퍼나 혼 조합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다. 덕트가 없는 포트(ductless port)나 12겹 자작나무 합판 인클로저의 디자인, 그리고 고품질 네트워크 회로 부품도 그 지분이 상당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곡 후반부에 등장한 피아노는 이 곡의 백미. 몇번이나 스피커를 쳐다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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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한 - Bach Violin Concerto No.2 (Bach Violin Concertos)

봄이 왔음을 알리는 바이올린 소리다. 12인치 저 큰 우퍼가 어쩜 이렇게 섬세하게, 1인치 컴프레션 드라이버가 어쩜 이렇게 나긋나긋하게 바이올린과 협주 악기들을 드러낼 수 있을까 싶다. 곡을 들을수록 이 Model A 스피커의 장기 하나가 견고한 사운드스테이지와 또렷한 악기 이미지임을 실감한다. 대충 혹은 흐물흐물, 이런 류와는 완전 거리가 멀다. 이 빈티지하고 레트로한 스피커에서 801 D4처럼 정제되고 강건한 무대와 선명한 음상이 맺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또 하나, AW250R과 Model A 조합의 또다른 매력은 배경이 아주 조용하다는 점인데, 음악이 흐르면 시청실에 떠돌던 온갖 노이즈가 다 사라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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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라만 - Dacoit Duel (Between Heaven and Earth)

저 큰 덩치의 스피커가 음악이 시작되면 일제히 사라진다. 소리가 딴 곳에서 나오는 것인가 싶을 만큼, 이 스피커 혹시 고장난 것 아닌가 싶을 만큼 가상의 무대 메이킹 능력이 대단하다. 흐트러짐 없이 타악 소리를 집중적으로 들려준다. 후반 여러 악기들의 음색과 연주 디테일이 아주 적나라하게 묘파되는 모습도 멋지다. 겉모습만 보고는 도저히 가늠하기조차 힘든 해상력 만렙의 스피커다. 한 번 듣기 아쉬워 패스 프리앰프의 볼륨을 보다 키워(42 → 59) 다시 들어보면, 시청실 공기가 반쪽이 날 기세로 북소리가 펑펑 터진다. 낮은 볼륨(9~11시)에서 확고한 폼과 견고한 무대, 조용한 배경이 돋보였다면, 조금 높은 볼륨(11~1시)에서는 예상대로 묵직하고 재빠른 저음의 타격이 압권이다. 소구경 우퍼 다발 조합으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폭발음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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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레틱 Model A,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정리해보면, 헤레틱 Model A와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조합은 곡에 담긴 여러 디테일을 숨김없이 정확하게 드러내주었고, 기대 이상의 해상력과 조용한 배경, 견고한 사운드스테이지를 뽐냈다. 일단 Model A 스피커는 SN비가 좋고 댐핑팩터가 높은 파워앰프와 좋은 궁합을 보인다. 100dB라는 높은 감도와 12인치라는 대구경 우퍼가 의외로 현대 스피커와 비슷한 음과 무대를 일궈낸다. 다음 2회 매칭에서는 필자의 300B 싱글 파워앰프가 등장, Model A와 호흡을 맞춰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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